흐르니까.

사각사각 2010. 4. 18. 16:05
자본주의식 도시화를 극렬하게 비판했던 수많은 사람들이 이 일에 전력투구했다. 사회학자, 도시 지리학자, 건축가, 도시계획가, 도시 정비기술자와 지역 의원들은 ‘후기’ 자본주의의 필요조건에 도시공간을 조화롭게 맞추기 위해 지금 공동의 노력을 경주하고 있다. 그들은 마르크스 사회학자 앙리 르페브르(3)가 이론화한 몇몇 주제에서 모든 혁명적 함의를 제거하고 나서, 그것들을 주저 없이 채택했다. 양보다 질을 우선시하고, 한 구역의 역사성, 진정성과 개성을 보존·복원하기 위해 틀의 표준화를 거부하고, 특히 자발적 사회성을 상징하는 공공 공간의 가치를 강조하는 것이 이런 주제에 해당한다.
 이것은 ‘불도저식 재개발’ 시대처럼 도시의 과거를 송두리째 뽑아버리는 것이 아니다. 그 시대에는 ‘호화’ 건물, 주택 혹은 사무실에 사용될 ‘토지’를 얻기 위해, 오랫동안 방치된 ‘비위생적’ 지역을 완전히 헐어버렸다. 또한 수세기 전부터 물려받은 구불구불하고 혼잡한 도로를 ‘자동차에 적합한 도시로 만들기’ 위해 ‘우회 도로’와 ‘방사선 도로’로 교체했다. 이제는 도저히 재생 불가능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더 이상 그것을 파괴하지 않고 ‘재개발’, ‘쇄신’, ‘재활성화’, ‘재생’한다. “‘재(re)’라는 접두어로 시작되는 이런 용어들은 우선적으로 도시에 긍정적 이미지를 부과하지만 내재하는 사회문제를 완전히 은폐하는 용어다. 하나의 구역이 재개발될 때, 그것은 당연히 상당수 거주민이 거기에서 쫓겨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 구역은 당연히 ‘더 나아지겠지만’ 똑같은 사람들을 위한 것은 아니다”(4)라고 벨기에 지리학자 마티우 반 크리킹겐은 지적한다. 프랑스 좌파연합 정부의 ‘도시정책’ 안에서 실시된 또 다른 유사 개념인 ‘도시 정비’라는 개념이 존재하는데, 그것은 거대도시의 중심지역 인구 수를 역동적이고 매력적인 ‘메트로폴리스들’처럼 조정하기 위해 우선적으로 기존 인구를 재정비한다는 의미다.

<현대의 극렬한 폭력: 도시, 지적 소시민, 서민계층의 소멸에 대한 소론>(아곤· 마르세유·2010)의 저자. 이 기사는 이 책의 서문에서 발췌한 것이다. -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건축은 도데체 누구를 위한 학문이고, 어디에 초점을 맞추어야 하나 등등의 고민은 이전부터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조그만 단어의 변화와 몰랐던 것들의 실체가 드러날 뿐이지 크게 변하고 있는 것은 없는 것 같다. 혁명은 조용히 다가온다고 한다면 이 상황도 그리 비관할 일은 아닐 듯.



뭐 이런 기사를 읽다보면 일단은 푸념이 튀어나올 수 밖에. 그리고 자주 술을 마시면 하는 친구의 말이 내 발걸음을 돌아서게 한다. 결국 우리가 이렇게 욕하는 비루한 현실이 니가 발을 딛고 있는 땅이라고 말하곤 하는데. 그 발언은 도데체 우리에게 어떤 의문도 떠오르게 하지 않는다. 정말 안좋은 말이라고 생각한다. 반대의 급부도, 찬성도 할 수 없게 뇌를 무력하게 만들어버리는 그 발언이 매우 강력하다는 것을 부정할 수는 없다. 하지만 지금도 적어도 우리는 그 발언에 의문을 가지고, 다른 발걸음을 옮기려는 노력을 해보아야 하지 않겠냐는 것이다. 그친구와는 참 술을 많이 마셨고, 한때의 열정을 그 순간에 모두 쏟아부은 적도 있었다. 또 다른 동생은 내가 항상 '자본'을 언급한다고 하는데 그 대화에서 그 동생은 무엇을 내게 이야기하려하는지 아직도 잘 파악하지 못한다. 결국 자본의 찌끄레기처럼 살고있는 나를 비난하는 것인지. 아니면 너무나 큰 거대개념 앞에서 발버둥 칠 바에야 작은 생활들의 통찰에서 다른 발걸음을 옮기는 것이 낫다고 이야기하는 것인지. 사실 뭐 내가 그런 이야기를 자주 꺼내는 것도 아니지만, 워낙에 주변에는 그런 학생분들이 없다보니 유독 내가 이야기하는 것처럼 받아들여지는 것같다. 사실 모두의 입장에 선악의 잣대를 들이댈 수는 없고, 좋다/싫다의 잣대는 들이댈 수 있다. 모든 문제들이 개인으로 침잠해들어가는 것 같지만, 사실 우리 모두 같은 틀 속에서 사유하도록 사육되고 있는 건 아닌지. 그리고 누구도 그에 의문을 제기하지는 않는 것 같고. 자꾸만 현실에 대해 음모론자가 되는 것 같기도 하고 ㅋ. 사실 모든 의문들이 몇년전에 갖고 있던 의문과 크게 다르지도 않다고 느껴진다. 같은 맥락에서 움직이고 있으나 다른것이 있다면 그 의문을 같이 생각하는 사람들이 변해간다던지, 내 자신의 기분에 따라 모든 의문에 눈과 귀를 막기도 하고, 모르쇠로 일관하는 경우도 생긴다는 건데. 뭐 다 어찌되었든 좋다.
죽기전에 해야할 일은 죽기전에 살아가야하는 것이고,
우리는 그저 있음으로 인해서 모든 것이 흐르게 된다는 것도 기억은 나니까.
아냐아냐 이건 위험하다. 상당히 이상해진 것 같다. 무서울 정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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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우주동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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